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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Blog2

글 분야

  • 작성자 사진: 낙화유수
    낙화유수
  • 2019년 12월 20일
  • 2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19년 12월 25일

루카 X 황녀 마리네뜨(정략결혼) 사이다빙수(@Ciderbingsu_LB) 님


[그대를 위한 선율]

*편의상 이름은 원작 그대로 갑니다만 동양풍이 주제이기에 이름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루카의 일방적인 짝사랑, 기본적으로 루카 시점으로 진행됨



정략결혼, 단지 그 뿐인 관계라 생각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약혼자를 처음 대면하러 가는 그날까지도 이 형식적인 절차가 어서 끝나기만을 바랐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은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막힌 상태였다.


‘얼른 끝나고 돌아갔으면...’


차기 황제의 남편감으로 선택받아 맺게 된 약혼이었다. 황녀는 자신보다 몇 살 어린 나이라고 했던가? 귀족의 혼인은 평민보다 더 빠르면서도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이 나이에 약혼자 하나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만, 그 탓에 자신은 감히 황녀의 약혼자로 선택받아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천한 음악에 빠진 기인이라는 소문 탓인지 고위귀족들은 자신에게 혼약을 잘 넣지 않았다. 앞으로도 없을거라 생각했기에 황녀와의 혼약 이야기가 오갔을 때도 그냥 지나갈 것이라 여겼다. 이런 기인이라는 소문이 도는 자에게 이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 앉을 황족이 혼약을 맺자며 진심으로 청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가에서 보기에는 자신의 위치가 적절해보였는지 그 뒤로도 꾸준히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리 차기 황제와 대면할 날이 오게 된 것이다.


“명심하거라, 황녀 전하 앞에서는 네 취미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알고 있어요”


황가에서는 어지간한 일로는 혼사를 무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 또한 혼사를 무르기 위해 노력해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황가에서 다 괜찮다며 밀어붙이는데 거절할 명분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그의 집안은 황가와 인척관계를 맺기 적당한 높은 위치의 가문이었고, 그는 집안에서도 내놓은 자식마냥 쓸모있다 여겨진 적이 없는 이였다. 그래서 황녀의 결혼상대로 적당하다 여겨진 것이다.


‘차기 황제로 낙점될 정도로 총명한 분이니, 황가의 품격에 맞는 가문이면서 야망이나 위험성이 없어보이는 날 선택한걸지도...’


더는 도망칠 길도, 뿌리칠 방법도 없다. 귀족의 자녀로 태어난 이상 정략결혼은 의무였다. 차라리 야반도주라도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런 생각을 읽히기라도 했는지 고민한 다음날부터 주위의 경비가 강화되어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끌려가듯 황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공식적으로 약혼 관계가 될 황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하를 뵈옵니다”


약혼한 관계라고는 하나, 상대는 황족이기에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고개를 드는 것을 허락한 후에야 그는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인상깊은 분이라 생각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을 볼 때도 그는 음악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마주한 차기 황제의 분위기가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함이 느껴져서일까, 그는 어느새 악상을 떠올리고 말았다. 하나의 곡을 만들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그의 머릿속을 타고 흘러내렸다.


‘뭐지?’


처음 보는 상대에게 이렇게 깊은 영감을 얻은 탓인지 심장은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만남일텐데, 이 시간이 끝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이 시간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감히 품게 되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고민만 하다가 그날의 만남은 막을 내렸다.



***



‘그 때는 몰랐지’


첫 만남을 회상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날 이후 머릿속을 맴도는 선율을 잊지 못해 몇 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비파를 손에 들고 당시의 음을 재현하려해도 그때의 감동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영감을 준 사람이 곁에 없어서가 아닐까 싶어 황녀의 소문이나 정보를 긁어모아보았다. 완벽한 군주의 상, 그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성군이 될 거라며 칭송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재미없어” 그 소문을 듣고 자신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단 한번 만난 상대에게 그토록 깊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을지 고민했다. 완벽한 왕의 자질을 지닌 자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눈동자를 본 순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태생이 황족이기에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탓이 아닐까 고민해도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그를 황궁으로 발걸음하게 만들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사이였지만 안면을 틀수록 그들의 사이는 전보다 부드럽게 변해갔다.


“설마 제가 황녀 전하 앞에서 비파를 연주하게 될 줄은 몰랐지요”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대의 소문이 너무 유명해서 말이지”


친밀했으나 언젠가 부부가 될 사이치고는 그들은 친구마냥 굴었다. 사랑이 없는, 단지 친애와 동료같은 감정만이 있는 관계. 지금의 그들의 관계는 이러했다. 적어도 황녀는 그리 생각하는 듯 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가 감히 품어버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한 시간만이 흘러갔다. 세 번째 만남까지는 형식적인 이야기만이 오갔다. 네 번째 만남도 그럴려니 했다. 방 안의 비파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준 것이 원인인지, 황녀는 비파를 가져와 내밀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무료한 것은 피차 마찬가지니 한 곡 연주해줄 수 없는지 부탁해오자, 집안을 위해 애써 눌러놓고 있던 음악을 향한 마음이 샘솟는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생기가 도는 그 눈빛에, 처음 만난 순간 떠올랐던 선율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지금이라면 연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즉홍적인 연주였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덕에 황궁의 악사 이상의 훌륭한 비파소리가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나왔다.


[굉장해...]


보통 귀족들은 음악에 미쳤다며 그를 특이한 취미를 가진 기인이라 여겼다. 하지만 눈 앞의 상대는 순수한 감탄을 보냈다. 저도 모르게 그는 감히 자신의 생각을 내뱉고 말았다.

[천한 음악에 빠진 기인이라 불리는 절 굉장하다 하시는 전하가 더 굉장하십니다.]

그 말에 황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을 맘에 담아두는 사람은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속에 담아두고 있는 그의 모습이 의외라고 대꾸하는 황녀를 향해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천한 음악이라...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네]

[...]

[그대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져, 나도 모르게 ‘굉장해’라는 속마음을 내뱉어버렸으니 말일세]


순수한 감상이었다. 음악을 즐기는 평범한 모습은 세간의 평처럼 완벽에 가까운 황제의 상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한 명의 인간 같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처음 본 순간 그토록 깊은 영감을 받은 이유는 세간의 평가와 막상 마주했을 때 숨기려던 진심이나 감정이 눈동자를 통해 비쳐보였기 때문이라고.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마음들이 아주 조금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이를 알아차린 것이다.



***




그 후로 만남을 지속하면 할수록 그들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갔다. 처음에는 몸서리치게 싫었던 정략결혼이 이젠 싫지 않을 정도로, 그 분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이 감정이 그가 생각하는 애정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했다. 친밀해질수록 서로가 갖고 있는 비밀은 하나씩 풀어져나갔고, 상대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황녀의 안색에서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감추려 애를 써도 그는 평소와 얼굴빛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그 대답에 아무말없이 손에 들린 비파를 어루만지며 음을 만들어냈다. 무거운 방 안의 공기처럼 묵직하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마치 상대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제가 보기엔 이런 느낌이었어요”

“......”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그림자였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눈에 보이는 것도 많아진다. 그 애달픈 마음은 마치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늘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그 완벽해보이는 겉모습 안에는 평범한 사람이 있었다. 황제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 생각해왔는데,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이 마음은 어찌해야 하냐고 울고 있는 그 모습은 애처로웠다.


“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잊혀질거라 생각했는데...”


웃고 있었지만 항상 웃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수 없이 노력했겠지. 완벽해야한다는 주위의 압력과 책임감. 제왕의 길을 험난했다. 선택지는 단 한가지였고 이를 위해 달리고 또 달렸지만 연정이라는 수렁이 침범했다. 흘러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그는 쉬지 않고 비파를 연주했다. 우는 것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눈앞의 작은 아이를 위해 손가락 사이로 끊임없이 곡이 흘러나왔다.


“이제 됐어...”


슬픔이 조금 가라앉자 황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네”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맺어질 수 없었어...”

그래서 널 선택했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심장을 쿡 찔러대는 기분이었다.

“후회는 하지 않아... 내 선택이고, 내가 가야할 길이었으니까”


참을 수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하는 황녀의 말을 들으며 그는 비파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너는 정말 굉장하구나”

“연주가요?”

“그 비파소리를 듣고있노라면 황제가 아닌 그냥 평범한 내가 된 것 같아”

“전하를 보면 떠오르는 음을 연주한 건 뿐이라”


어쩌면 자신과 닮은 음악을 듣고있다보니 감정을 폭발시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파 뿐만이 아니야 그저 너를 보면 이런 감정을 털어놓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에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동질감일지도 모른다. 기인이라 불려도 애써 속을 숨기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와, 속마음이나 연정을 감춘 채 황제가 되려는 황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조차 그들은 닮아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각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은 사랑하는 이의 눈물에 의해 눈을 뜨고 말았다. 그저 단순한 친애 따위가 아닌 사랑이었다.


“루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서로의 마음이 다른 것에 슬픔을 느낀다. 왜 이 상황에 이름을 불러주는 것인지, 처음으로 불린 이름이었지만 조금도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그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황제의 길에 그가 있다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네, 전하..”


저로 인해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다면 자신은 계속 곁에 있을 것이다. 사랑을 애써 끊어내려는 그녀와 달리 루카의 사랑은 끊어낼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비파의 음색이 주위의 고요함에 섞여들어가 감미롭게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어느새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취해 모든 것을 잊으려는 그의 작은 황제를 바라보며 그도 조심스레 선율에 몸을 맡겼다. 사랑하는 이의 상처를 치유하듯, 다가서지 못하는 그의 마음 또한 치유되길 바라면서.








도깨비 블랙캣 X 마리네뜨 강선호(@SeonHo_Kang)님

[동앗줄, 그 알 수 없는 도움은]

마리는 높은 담장위에 휘영청 떠오른 달을 보았다. 추석날 옹기종기 모여 만들어진 송편처럼 작고 예쁜 달이었다. 어디선가 여인네들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들렸다. 


손에 잡힌 비단 위로 수놓던 나비가 훨훨 날았으면 했다. 그렇게 저 담장을 넘어 자유로이 떠났으면 했다. 나갈 수 가 없는 그녀는 그 어렸던 날, 단오날에 머리를 감으러 나갔다 한참 후에야 발견 된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저 기왓장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잠시 앉아 조는 새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제 원치 않는 혼약으로 못하게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멀리 가지도 않았건만, 계곡에서 꽃신 한 짝을 제외한 흔적이 없었다며 펑펑 울었던 몸종은 그날로 쫒겨나갔다. 아버지께서 어딜 다녀왔는지 기억 하느냔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다시는 나갈 생각 말라는, 엄명이었다.


"그날의 바람은 참으로 따스했었는데."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길을 찾아 주었던 찬란한 머리색의 남자를. 그날의 바람과 묻어온 향기를. 뿌옇게 쌓인 안개 속에서 들리던 아름다운 음악을.

가녀리고 약한 어렸던 그녀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하던 그의 목소리도 기억했다. 


"나를 꼭 잡아야 한다, 어린 인간아. 꼭 잡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저 음악이 들리지? 피리 소리가 들리니? 그렇담 어여 가야겠구나."


잊지 않기 위해서 돌아온 그 순간부터 몇십번을 곱씹은 기억이었다. 그때 빙긋 웃으며 말하던 그의 얼굴은 이제 소녀가 된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루가 멀다며 항상 그를 머리속에 그렸고, 아버지 몰래 그 풍경을 그리고, 그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곧 몇 주가 지나면 단오날이 된다. 1년에 단 하루. 다시 그 계곡으로 가기 위해 그녀는 아버지께 몇달을 애원했다. 행여 그가 갔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방 구석 한켠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여인네들의 시끌벅적한 웃음 소리는 괜시리 마음을 널뛰게 했다. 마리는 창포물로 감은 머리를 빗어 내려 수를 놓듯 땋아내렸다. 살며시 내려앉은 햇살이 그녀의 머리칼 위에서 춤을 추었다. 신이 난 아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널을 뛰고 그네를 탔다.  시원한 바람결에 찡한 향내음이 묻어왔다. 햇살의 향내일까, 궁금해 하는 마리의 눈길에 반짝이는 머리칼이 언뜻 스쳤다. 


"아리야, 내 저기 좀 다녀올 터이니.. 놀고있으려무나.."


귓가엔 몸종의 대답마저 들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꿈에 그리던 그였다. 발길을 좆아 달음질 치듯 걸었다. 어느새 숲길 가운데 홀로 서있는 자신을 깨달은 마리였다. 서글퍼진 마음을 애꿎은 옷으로 감싸며 뒤돌아 선 그때 였다. 소리도 숨결도 없이 신비로운 검푸른빛의 두루마기가, 살짝 미소지은 그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아이.. 아니.. 이젠 어엿한 양반가 규수로구나. 잘 지냈느냐."


정확히 그의 목소리였다. 그녀를 기억했다. 그 안도감에 마리는 다리가 풀리려는 것을 꾹 참고 달아오른 얼굴을 들어보였다. 깜짝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나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상처를 받은 그녀였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구나. 필시 구름에 걸친 둥그런 달도 그 빛을 숨기기에 바쁠 것이 분명하구나."


"..만나뵙길.. 바랬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원망스러운 마리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발언에 당황과 붉어진 귀를 숨기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더군다나 자신이 아름답다 하였다. 그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녀조차 달아오른 자신의 귀가 느껴졌다.


"혹여 내게 원하는 것이 있느냐."


잠시 헛기침을 한 뒤,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선명한 녹색 눈길에 마리는 멎을 뻔한 심장을 달래며 입을 떼었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저를 이곳에서, 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도, 도깨비님.."


도깨비는 한참을 웃었다. 보통의 인간들은 그런 소원을 빌지 않는다는 말도 곁들여 가며 웃었다. 듣기 좋은 웃음 소리에 마리 또한 같이 웃었다. 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요 근래 약혼일이 잡힌 후부터는 그녀에게서 미소는 찾기 힘들었기에.


"너를 보낸 이후에 계속해서 너를 지켜보았다. 네가 그린 그림들, 흥얼거리던 우리네 음조, 나를 꿈꾸던 네 모습까지."


"예..?"


"처음엔 네가 걱정이 되어 곁에 숨어 지내었다. 그리고 점차 어엿한 여인이 되어가는 널 보며 이러면 아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잠시 널 떠나 있었다. 인간과 도깨비니까.. 하지만 그동안.. 네 생각이 많이 들었단다."


도깨비는 애꿎은 갓끈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마리는 갓끈을 보자 그의 버릇이 참 오래되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갓은 낡아가지만 끈은 새것이었다. 그마저도 몇 시간내에 끊어질 것 처럼 문질거리는 도깨비였다.


"이리 다시 보게될 줄은.. 기대조차 하지 못했는데.."


머뭇대다 들어올린 손길이었다. 살짝 스치는 그의 손길이 흘러내린 마리의 머리칼에 닿았다. 마리는 자신의 손을 들어, 그의 얼굴께에 가져다 대었다. 손끝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내가 그리 좋은 밧줄은 아닐 것이야.. 그래도 괜찮으냐."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은 아딜 이라 한다. 내 손을 잡게나, 나의 신부여."


별처럼 웃어보이는 그의 얼굴 뒤로 할머님께서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호랑이를 피해 도망간 남매. 호랑이의 밧줄은 썩어 문드러진 밧줄이었다. 설령 그런 밧줄이라 하더라도 마리는 그가 내리는 밧줄을 잡을 것이었다. 마리에게 그는 절대 그녀를 해치지 않을 것 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과자를 좋아하던 양반가 규수가 그날 사라졌다. 푸른 빛이 감돌던 머리카락이 아름답던 여인이 사라졌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도움은 그렇게 단단히 감긴 밧줄이 되어 도깨비의 신부를 맺어주었다.


그날 밤에는 별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마치 둘의 인연을 축하하는 것 처럼. 빼어난 곡조의 새소리가 들렸고, 산길을 걷는 나그네들은 옆에서 널뛰는 도깨비 불을 뒤로하고 무사히 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다시 없을 밤을 닮은 여인과 해를 닮은 도깨비의 결혼날이었다.







왕자 아드리앙 × 호위무사 마리네뜨 밸(@20475_U)님


[고뿔]

왕자님.

왕자님?


"······어, 응. 마리야."

"활 쏘기 연습하러 가실 시간입니다."

"그래. 갈게."

"무얼 그리 유심히 보십니까?"

"연못의 색채가 오늘따라 더 짙어 보여서 보고 있었어. 마리, 이리 와 봐. 진짜 그렇지 않아?" "···정말 그렇네요. 그러니 이제 갑시다. 저기 왕자님의 말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마리야."  


나지막한 음성이 마리의 귀에 울렸다. 두 볼이 연못 위에 떠있는 연꽃의 색처럼 물든 것도 모른 채 마리는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왕자를 쳐다보았다.


"네, 왕자님."

"오늘만 활쏘기 연습에 빠지면 안 될까?"

"오늘만이라니요. 그저께도 빠지셨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만, 동물들을 쏘아 죽이는 건 너무 싫단 말이야."  


마리는 풀이 죽어 고요한 눈동자로 연못만 들여다보고 있는 왕자를 가만 보다가 새삼 그의 속눈썹이 길다는 것을 느꼈다. ···예쁘다.


"·····그건 저도 싫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래. 아바마마께서 나의 힘을 키우려고 시키시는 거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나는 힘이 충분히 세다고. 안 그래?"

"왕자님, 저보다 힘 약하실걸요."  


왕자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반박했다.


"어찌 내가 너보다···"

"왕자님. 저 호위무사인 거 잊으셨습니까?"

"···그럼 시험해보자."

"네? 어, 어떻게······"

"따라와 봐."  


왕자는 마리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걸어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들어와."

"······왕자님, 저는 들어가지 못하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명이다. 들어와."

"···이럴 때만···. 네."  


마리는 주변을 두리번대다 신을 벗고 왕자의 방에 조심히 발을 들였다.

"그래서, 어떻게 시험해본다는 말씀이십니까?"

"팔씨름을 하면 알 수 있잖아."  


하며 왕자는 자신의 책상에 한 쪽 팔을 놓고 마리와 눈을 마주쳤다. 마리는 잠시 머뭇대다 왕자의 손을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자··· 시작!"  


마리는 조금만 버티다가 힘을 몰아 써서 이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힘을 쓰던 왕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저에게 웃어 보이는 순간, 갑작스럽게 힘이 풀려 둘의 손은 왕자 쪽으로 순식간에 넘어가버렸다.


"보았어? 보았지? 나도 힘이 세다고."

"······."

"···마리? 무슨 일이야? 얼굴이 붉어. 혹시 고뿔에 걸린 거야?"  


왕자는 손등으로 마리의 볼을 쓸어내렸다. 마리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왕자를 제치고 급히 신을 신었다.


"···왕자님이 저보다 힘이 센 게 증명되었으니, 오늘 활쏘기 수업은 안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딜 그리 급히 가?"

"훈련받으러 갑니다."

"···응. 잘 가."  


마리의 뒷모습을 보며, 왕자는 새삼 마리에게 위로 틀어올려 묶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신비롭게도, 흑발이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마리의 머리칼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서양 사람이 아닌데도 옅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구슬 같았다.  왕자는 가끔 하늘이 마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낮 하늘의 색을 마리의 눈동자에게 주고, 밤 하늘의 색을 마리의 머리카락에 준 것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까 마리의 얼굴이 고뿔에 걸린 것처럼 붉고 뜨거워 걱정이 됐다.

너는 어찌 그렇게 항상 강인할 수 있어?


왕자님, 저도 무너질 때가 있어요.


그게 언제인데?


……비밀입니다.


마리야. ……너 얼굴이 붉어졌어.


……고뿔에 걸릴 것인가 봅니다.


왕자는 며칠 전 마리와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시켰다.


그래. 마리가 무너질 때는 바로 지금이었던 거야. 병에 걸렸을 때.


"마리."

"왕자님?"


왕자는 마리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와, 왕……"


마리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귀여운 마리. 왕자는 생각했다.


"마리, 너…"


"왕자."


"아, 아바마마."


"폐하."


마리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폐하가 여기엔 웬일로 오신 걸까. 왕은 곁눈질로 마리를 흘긋 보더니 왕자에게 말했다.


"저런 것이랑 개인적으로 말까지 섞느냐?"


"하지만 아바마마, 마리는,"


마리는 허리를 숙인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폐하….


"됐다. 가자."


"…아바마마, 어디를…."


"네 궁으로."


"마리야. 내 궁 앞 연못에서, 하늘에 노을이 붉은색으로 물들 때쯤에 보자."


왕자는 마리에게 속삭이고는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며 웃음 짓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햇살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은 눈부심에 마리는 대답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리며 서 있었다. 마침 쏟아지는 낙엽이 마리를 툭,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왕자는 그런 낙엽들을 밟으며 그의 아버지 뒤를 쫒았다. 바스러지는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마리는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고 그렇게 서 있었다.


아, 왕자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이 새하얀 가을 하늘 구름은 내 절절한 마음에 점차 물들어만 가고… 언제나처럼 당신은 밝게 빛나는 햇빛 같아서… 내 푸른 눈동자는 그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며……


자신의 방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있던 마리는 맑게 울리는 새소리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게. 그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빼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났다.


왕자님과의 약속!

마리는 신발을 꿰어 신고 달렸다. 왕자님이 기다릴 텐데… 바보같이……. 왕자의 궁 근처에서 속도를 줄이고 차오르는 숨을 애써 가다듬으며 찰랑이는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아, 맞다…."

급히 나오느라 머리를 못 묶었네. 어쩌지… 마리가 당황해 머리를 뒤로 모아 그러쥐고 동동거리는 차에도 문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열렸다.

"…왕자님."

"마리, 왔…… 어?"


마리는 당황해서 꼭 쥐고 있던 머리칼을 스르륵 놓고 허리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약속에 늦을까 싶어서 급히 오느라 머리카락을……."


마리는 고개를 들고 여전히 아름다운 왕자를 바라보았다. 노을빛이 둘을 감쌌다. 짙었다, 모든 게. 이 노을빛도,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의 색도,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붉게….


왕자는 말없이 마리를 바라보았다. 갈바람이 둘을 부드럽게 감쌌다. 흐트러지는 머리칼이, 마주친 눈이, 붉은 노을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왕자는 심장이 뛰었다. 아니, 사실은 마리 때문이었다. 내내 틀어올린 머리를 하고 있던 터라 구불구불해진 마리의 진푸른 머리카락이 왕자의 눈앞에서 일렁였다. 그 사이로 반짝이는 마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왕자의 얼굴이 붉었다. 지금, 이 파도치는 감정들의 배경인 노을의 색깔만큼이나. 사르륵하고 바람에 낙엽이 쓸려가는 소리가 퍼졌다. 지금 왕자는 마치 고뿔에 걸린 것 같았다. 귀에까지 심장소리가 둥둥, 하며 울렸다.


"……마리."

"……네, 왕자님."

"나, 나 말이야…. 고뿔에 걸린 것 같아."

"……."

"그리고…"


……네가 왜 고뿔에 걸렸는지도 알 것 같아.







퇴마사 블랙캣 X 저승사자 마리네뜨 빛하늘(@moonsky124)님

[사자 퇴마록]

빛을 내리는 달이 날카롭게 웃던 그믐이었다. 서늘하게 드리워진 밤공기에 검붉은 혈이 튀고 힘없이 주저앉는 소리는 차디찬 바람을 타고 퍼져간다. 조그맣고 힘겹게 내뱉는 신음이 조금 얇아지더니 곧 맥없이 끊기고 만다.


그날이, 한적하고 고요한 밤을 찢으며 다섯 번째 총성이 울린 날이었다.





-



 밖은 소란했다. 결계가 엄격히 쳐진 퇴마원에 잡귀가 드나든 듯 모두의 이목이 끌려 있었다. 제 거처에서 학문에 몰두하던 아드리앙은 소란함에 문을 밀어젖히며 물음을 던졌다.


 "잡귀라도 들어온 것이냐. 왜 이리도 소란인지."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얼굴에 몇몇 원생들이 그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 중 하나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한동안 조용한가 했더니 간밤에 또다시 총성이 울렸습니다. 원장님께서 그토록 귀애하시는 ‘애기씨'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몇 달 전부터 불가사의한 일들이 이리도 일어나니,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의 눈가는 다분히 경직되고 입술이 떨려왔다. 원체 겁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드리앙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곧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 역시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 움츠러든 상황이었다. 그는 잠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생각을 이었다. 쉬이 그칠 일이 아닌 듯싶었다. 아드리앙은 조용히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오. 어련히 잘될 것이니."


 그의 눈길이 허공에 닿고 또다시 시간이 흐른다. 원생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꿈쩍도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추위를 실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흩어지자 그의 눈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도톰한 입술이 조그맣게 달싹이고,


 “‘좋은 퇴마사는 시간을 허투루 흘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다정하게 온기가 배어 있던 두 눈동자에 한기 서린 칼날이 스며들자 원생들은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숙연하게 걸음을 돌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아드리앙은 입가에 작게 미소를 걸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던 몸을 안으로 들이며 그가 중얼거렸다.


 “‘애기씨’의 죽음이라….”


 그의 입가에 나른히 번졌던 웃음이 지워지며 문이 닫혔다.


 그가 애달프도록 연모하던 여인의 죽음이 그 여린 가슴에 쓰리게 박혔다.







 그믐이 지고 달이 하늘에 묻힌 밤이었다. 아드리앙은 제 거처에서 나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토록 좋아하던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잠도 고요히 찾아오지 않는 날이었다. 하염없이 품었던 여인을 품에서 놓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말없이 흙바닥에 발을 디디며 차갑고 축축한 밤공기를 크고 느릿하게 들이마셨다. 새벽의 공기처럼 폐를 상쾌하게 식혀주는 듯했다. 해의 따스함은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지만.


 아름답게 쌓아놓은 산책로를 한참 벗어나고 나무들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섰다. 아드리앙은 흙을 옭아맨 굵고 기다란 나무 뿌리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 여인이었다. 그토록 연모하고 애틋하던 사람이 검은 상복을 입고 제 눈앞에 아른거렸다. 귀신의 장난이라는 생각에 아드리앙은 형체를 손으로 흩뿌리고 눈을 떴다. 허나 그 여인은 여즉 제 눈앞에 걸음이 멎어 있었다.


 아드리앙은 그에게로 발을 뻗으며 조금씩 다가간다. 고요함에 사무친 이 밤이 이보다 위태로웠던 적이 있는가. 그는 말라붙는 목 뒤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침을 넘기며 여인 앞에 가만히 걸음을 세운다. 애초에 잡귀는 출입이 불허한 이곳에 그런 농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여쁜 그대만 있을 뿐이다. 그는 얼굴에 가득한 슬픔을 웃음으로서 지워내고 여인에게 묻는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유감이지만, 나에겐 그 어떤 기억도 없소.”


 품위 있고 여전히 무게 실린 이 여인은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억이 없는 듯했다. 아드리앙은 입을 다물고 느리게 눈을 뜨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이내 목소리를 나직하게 흘렸다.


 “애기씨께서는 이곳, 퇴마원 원장님의 하나뿐인 따님이시고 지난 밤,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아마 저도 기억 못하시겠지요.”


 슬프게 물들어가는 그의 표정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잠시 머뭇거리며 제 발끝을 바라보던 그는 어깨에 닿는 가볍고도 무게감 있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여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기억하고 있소. 그 노란 머리와 녹빛 눈을 말이오.”


 아드리앙은 푸른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푸른 물감이 물에 젖어 물든 듯 맑았다. 여즉 먹구름을 띄워놓았던 얼굴에 햇살이 새어든 듯 미소가 번졌다. 이룰 수 없었던 그 사랑을 하염없이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는 여인의 손가락에 지그시 입술을 누르며 눈을 천천히 들었다. 두 눈이 야릇하게 휘고 메마른 살갗을 촉촉히 수놓는 입술이 살며시 떨어진다. 여인은 담담한 눈빛으로 제 앞에 무릎 꿇은 이를 응시하더니 이내 시선을 올린다. 그의 흔적이 남은 손을 뒤로 감추며 차분히 묻는다.


 "내일 이 시각, 이곳에서 귀하를 만나고 싶소."


 목소리는 빠르게 닿고 눈가는 느리게 덮인다. 아드리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달 한 줌 없이 구름이 짙은 밤이었다.




 검고 푸른 새벽이었다. 일렁이며 떠오르는 햇살이 나른히 비추어들고, 밀려드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아드리앙은 내뱉는 숨결에 졸음을 흩뿌리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고개를 빳빳이 들고 뒷짐을 진 원장과 마주쳤다. 거대한 덩치 앞에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그는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간밤에 안녕하셨습니까."


 "자네는 그렇지 않은가 보군. 눈 밑에 그늘이 졌네."


 아드리앙은 원장의 표현 방식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음에 어설프게 답을 하는 원장의 화법은 여전히 낯설었다. 이해할 수 없고, 적응할 수 없다. 그는 대답을 미소로서 갈무리하고 문지방을 넘었다. 원장은 밑으로 내려오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곧 용건을 꺼냈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오."


 아드리앙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도 귀애하는 애기씨의 일이 아닌 이상 그가 이곳에 직접 행차할 일은 없다. 그저 잠자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퇴마원에 들어온 일반인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네. 이곳에서 영을 볼 수 없는 우리의 마지막 방어선 아니겠는가."


 이곳, 유능한 퇴마사들이 모여 훈련을 하는 퇴마원. 밖으로는 어느 귀신이든 잡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정작 그들은 이곳에서 모든 힘을 잃는다. 퇴마원 원장조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결계에 의해 퇴마사들은 원내에서 영을 볼 수 없다. 영을 볼 수 없는 퇴마사라니,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아드리앙은 속으로 비소하며 원장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런 퇴마사들을 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은 영을 볼 수 있는 일반인이었다. 이 이상한 결계는 퇴마사의 기를 막으나 일반인의 눈을 가리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원장은 매번 영을 보는 일반인을 퇴마원에 데려왔다. 스스로 지킬 수 없다면 남의 힘에 붙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방어선이 되어주는 일반인들이 하나둘 죽어나더니, 결국 사랑하던 제 딸까지 죽어버리니 이리도 찾아온 것이다. 아드리앙은 표정을 감추려 입술을 짓눌렀다.


 "그게 그러니까…."


 "알아봐달라는 뜻이십니까?"


 말이 늘어지자 그는 원장의 목소리를 단숨에 끊어버린다. 온순하던 그의 눈빛이 바뀌자 원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아드리앙은 조금 굳어버린 원장을 향해 웃어주며 말을 덧붙인다.


 "힘이 닿는 데까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애기씨 일은…. 아드리앙은 목소리를 삼켰다.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하다. 그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 아늑한 거처로 들어갔다.


 그 여인을 만나기까지,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아드리앙은 지난 밤 걸었던 길을 또다시 밟았다. 질펀한 흙이 발에 묻었다 흩날렸다. 그는 굵게 뻗은 나무 뿌리 앞에 멈추며 검은 옷의 여인을 바라본다. 여인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자 바닥에 무릎을 내리며 고개를 숙이는 그였다. 여인은 그에게 낮게 속삭였다.


 "떠나시오. 귀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소."


 아드리앙은 여인의 손등에 입술을 포갠다. 그 달큰한 감촉이 쓰라리게 감돌더니 서서히 스며든다.


 검은 가면을 쓴 고양이는, 또다시 묘하게 휜 눈으로 제 주인을 바라본다.



 마리네뜨는 퇴마원의 유일한 일반인이었다. 유일하게 영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해가 되는 영을 사냥하였다. 어느 날 밤, 그런 그의 눈에 그 사람이 들어왔다.


 검은 가면을 쓰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아드리앙은, 평소와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검게 물든 기운을 주변으로 퍼뜨리며 하늘에 떠다니는 영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그에게 끌려간 영들은 곧 그에게 흡수되며 기운이 사라졌다. 마리네뜨는 그런 그를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퇴마원에 결계를 친 이가 곧 그이고, 시작점을 알 수 없던 악한 기운 역시 그의 것임을.


 마리네뜨는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한 번쯤은 그와 차를 하고 싶었고, 두 번쯤은 그와 정원을 거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내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애기씨 계십니까."


 귓가를 간질이며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눈을 떴다.


 "그 총구는, 저를 향한 것입니까."


 마리네뜨는 무심결에 총구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검은 가면 속 눈을 번뜩이며 블랙캣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총을 제 위치에 두자 블랙캣은 이미 그 뒤에 발을 멈춘 지 오래였다. 마리네뜨는 발을 뒤로 빼냈다.


 "귀하가 악령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소. 그러니 담담히 떠나주기를 바라오."


 "당기십시오."


 블랙캣은 담담히 말했다. 발걸음을 돌리지도, 목소리를 떨지도 않았다.


 "그 방아쇠를."


 그의 어깨가 돌아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리네뜨의 귓가에 속삭인다.


 "애기씨를 향해."


 쇠처럼 얇게 무너지는 목소리에 마리네뜨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의지가 아니었다. 제 몸을 스스로가 다룰 수 없었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누군가의 손가락에서 놀아나듯, 꼭두각시 인형처럼 몸이 움직였다. 마리네뜨는 차갑게 빛나는 총구를 제 턱에 가져다대며 무게를 실었다.


 온 힘을 다해 저항해보지만 몸은 한 치의 움직임도 없다. 그는 제 앞에 자세를 낮춘 블랙캣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검은 가면을 벗은 아드리앙이 자신을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제 모습을 감추는 그런 새카만 가면을 눈 위에 찬찬히 덮었다. 감고 있던 눈을 속히 뜨니 검은 연기가 그 곁으로 흩뿌려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아드리앙, 아니 블랙캣은 비소를 입에 물고 발을 내디뎠다.


 분노가 밀려오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잔혹한 밤, 잔인한 그대. 난 결국 그대에게 홀려 이 밤을 끝내고 만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물을 바라보며, 손가락에 힘을 실어 당긴다.


 오늘이, 잔혹하고 비명에 찼던 밤을 잠재우며, 다섯 번째 총성이 울린 날이었다.





토끼와 거북이 AU 나타마리 에푸티오(@FTO_write)님



푸르고 깊은 바닷속에는, 많은 물고기,거북이,고래,꽃게 들이 모여서 큰 나라를 이루고 살았답니다. 그리고 그 곳 중심에는 큰 성이 세워져있고, 그 성을 “용궁” 이라고 불렀답니다.


“용궁? 진짜로? 용궁에는 용이 사는거 아니야? 물고기들은 어떡해?”

“후후.. 용궁에는 거대한 용 보다 무서운 게 있었어요 공주마마. 이야기, 더 들려드릴가요?”

“응!”


옛날옛날에..


“후.. 이걸 어쩌면 좋담?”

“벌써 나흘쨰야 나흘째, 의원은 아직 소식이 없는가?”

“알아냈습니다!”

“오오..! 그래그래 용왕님의 상태는 어떤가?”

“용왕님께서 일어나신게 아니라 병세에 대해 알아낸 것입니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말이나 하게!”


평화롭던 용궁은 용왕님의 일 때문에 한참 시끄러웠습니다. 용왕님 께서 아주아주 큰 병에 걸렸거든요


“용왕님께서 나을 방법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게 뭔가!?” “당장알려주게!!”

“바로...”


해마의원은 다른 대신들의 눈을 살펴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어요


“바로 토끼의 간 입니다!”

“아니! 그럴수가?” “토끼?? 밖에살고있는 그것?” “말도 안될세!!” “아니 무슨수로 그걸...”

의원의 말을 듣고 모두들 혼란스러워졌답니다. 밖에 나가는 건 너무 위험했고, 게다가 토끼를 죽여야 했으니까요!

“으으.. 토끼야...”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는 가운데, 해마의원은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용왕님께서 아프신 동안, 죗값을 치르지 못한 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조용해 졌어요


“그럼.. 그.. 적색자라를..?”

“아니 될 소리요! 아무리 처벌이라고 해도, 생물을 죽이고 오라는 일을 시키려 하다니”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대들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라도 알고있는 겐가?”

“끄응..”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대신들은 감옥에 갇혀있던 붉은 자라를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용왕님께 지은 죄를 용왕님의 병을 낫게 하는걸로 갚으라는 말을 하면 된다고 하면서 말이죠


“죄수 붉은 자라는 나오거라!”

“네..”

“네놈이 열흘 전에 저지른 죗값을 아직 받지 않은 것이 사실이냐?”

“네.. 맞습니다.”

“이름이.. 나타니엘?”

“네..”

“용왕님께서 나라를 돌보지 못하는동안, 우리가 네놈의 죗값에 대해 논의 하였다.”

“...”

“너는 원래 처벌을 받게 될 운명이었지만! 용왕님의 병세를 낫기위해 지상에 다녀오면 넘어가 주기로 하였다.”

“네??”

“지상에 다녀와서 토끼를 찾아서 간을 가져오거라! 특히 몸이 남색으로 덮여진 토끼가 좋다는 구나”

“아니되옵니다! 그것만은 안됩니다!! 제발..!”

“어허! 말이 많구나 빨리 다녀오거라!”


붉은 자라, 나타니엘은 그 말을 듣자마자 용궁에서 쫒겨나고 말았어요, 토끼의 간을 구하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던 나타니엘은 바위에 앉아 엉엉 울었답니다.

“나타니엘! 무슨일이야”

“아.. 마크. 그게.. 용왕님께서 편찮으시다고 나보고 지상에가서 토끼의 간을 가져오래”

“뭐?! 그래서 풀려나게 된거야?”

“응..”

“어우.. 그거.. 그것참 고민이 많겠다.. 게다가 밖에는 무시무시한 인간들과 동물들이 많잖아..”

“응.. 그렇다고 들어서 더 무서워..”

“아.. 아니 이런말을 하면 안되는데.. 나,나타니엘! 저쪽으로 나가서 숲으로가면 많이 크지만 무섭지 않은 동물들이 있어..! 토끼도 아마 거기에 있을거야 인간은 별로없고.. ”

“어.. 으응 고마워”

“자! 그러니까 빨리가! 그렇지 않으면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될테니깐!”


그렇게 말하곤, 마크는 나타니엘을 바다밖으로 밀어버렸어요! 깜짝 놀란 나타니엘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물 밖으로 얼굴을 빼곰 내밀게 되었답니다.


“으으.. 눈부셔..”

“@#%@^!^&&$%”

“&$#@@%$!%”

“무슨.. 소리지? 일단.. 마크가 말한 숲으로 도망쳐야겠다.”


나타니엘은 처음 밖으로 나오게 되어서 신기하지만 많이 겁이 났어요. 작은 풀소리, 바람소리 새들의 재잘거림에도 깜짝 깜짝 놀랐답니다.

조금 헤엄치자, 마크가 말했던 작은 숲의 입구가 보였어요. 나타니엘은 그곳에 발을 살짝 대었답니다.


“우와..”

“안녕?! 너는 자라맞지? 신기한 색이다!”

“으악!”


나타니엘이 넋을 놓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었어요! 그걸듣고 놀란 자라는 으악!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다에 빠질 뻔 했답니다.


“어우 괜찮아? 미안해 너무 신기해서..”

“어.. 아니야 괜찮아 나는 바다 밖을 처음 나와서 그래”

“그렇구나! 어쩐지 처음보는 자라인것같았어”

“엄.. 나는 나타니엘 이라고해, 보시다 시피 붉은 자라야 나 같은 색은 별로 없다고 해서 다들 나를 이름으로 잘 안불러줘.. 너는?”

“그렇구나.. 나도 그래! 내이름은 마리네뜨! 나 같은 남색토끼는 처음 이라면서 다들 이름으로 잘 안불러주는거 있지? 우리 똑같네”

“토..끼?”

“응! 내가 토낀줄 몰랐어? 아.. 바다 밖은 처음 이랬지..”

“어..어 응..! 해야할 일이 있거든..”

“해야할 일? 그게 뭔데?”

“그게..”


나타니엘은 토끼의 간을 가져오라는 말이 생각나서 주춤 거렸어요 지금 막 만난 토끼를 죽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나타니엘은 그 토끼와 친구가 되고 싶었답니다


“응? 무슨 일인데 거북아 가르쳐줘 나도 도와줄 수 있어!”

“그게.. 용왕님이 토끼를.. 남색 토끼를 데려오라하셨어”

“나를? 바닷속에서도 나를 아는거야?”

“어어.. 그런가봐”

“흠.. 아!”


토끼 마리네뜨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어쩔줄 몰라하는 나타니엘을 두고 말이죠 그러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나타니엘의 손을 잡고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따라와! 신기한걸 보여줄게”

“뭐..?뭔데?”

“가보면 알아! 네가 날 데려가야 한다고 했잖아”

“어..? 어 하지만..”

“맞아! 나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으니깐!”

“어..?”


손을 잡고 울창한 숲을 헤쳐 들어간 곳은 웅대한 호수와 커다란 바위가 세워진 곳이었어요. 토끼는 바위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죠


“신령님! 저왔어요 남색토끼 마리네뜨! 신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신령님..?”

“응! 저 바위를 봐!”


마리네뜨가 말 하자마자 바위위에는 흰 천을 곱게 입은 신령님이 나타났어요 나무 지팡이를 흔들고 바위위에 탁 걸터앉아서 마리네뜨와 나타니엘을 보았답니다.


“오오, 마리네뜨 오랜만이구나, 옆에는.. 바다에서 새로사귄 친구니?”

“네! 그런데.. 바다에서 제 도움이 필요하데요”

“흠..”

“신령님! 제가 바다에서 숨을 쉴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신령님은 깊이 고민했죠, 그러곤 나타니엘에게 물었어요 “지금 용왕은 누구더냐?” 나타니엘은 갑자기 그걸 왜 묻는지 궁금했지만 대답해 주었어요 “아드리앙 전하께서 깊은 잠이 들어, 가브리엘 이라는 빛을 가진 물고기가 지금의 용왕님입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그 말을 들은 신령님은 마리네뜨에게 두가지 물건을 주었답니다.


“신령님, 이게 뭔가요?”

“그 물약은 너를 바닷속에서 숨쉬게 할수 있단다. 하지만 물속에서 말을 할수 없어. 한번 입을 열면 5분 내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 한단다 알겠지?”

“네..”

“그리고 그 물건은 인간들이 만든 기계란다. 아마 너에게.. 바닷속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될거란다. 아마 똑똑한 너라면 어디에 쓰게 될지 알수 있을 거야”

“알겠어요! 감사해요!”


토끼는 신이나서 나타니엘을 데리고 다시 바다 앞으로 달려갔어요. 어찌나 빠르던지, 나타니엘이 말릴 시간도 없었답니다.


“나 바다에 들어가는건 처음이야! 용궁 가게 되면 안내 해주는거다?”

“잠시만 마리네뜨!! 으아악!”


마리네뜨는 너무 신이 났답니다. 처음보는 바다속의 풍경, 물에 들어가서 숨을 쉬게 되는 이 느낌.. 그리고 첫 바다 친구와의 새로의 모험들이 마리네뜨를 설레게 했어요


하지만 나타니엘은 너무나 걱정이 됐답니다. 이제 막 사귄 친구를 속이고 바다속에 들어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아무말도 할수 없었답니다.


“마리네뜨.. 꼭 용궁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깐.. ”

“나타니엘! 너 진짜로 헤낸거야?”

“어..? 어 마크..”

“?”

“아.. 얘는 마크야.. 내 친..-”

“이럴때가 아니야 나타니엘! 너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셨어 토끼를 데려가면 뭐 거기서 알아서 해주겠지”

“하, 하지만..!”


나타니엘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네뜨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죠. 그런데 그때! 궁의 병사들이 나타났어요!


“죄인 나타니엘과 용왕님께서 그렇게 원하던 남색토끼! 궁에서 부르니 빨리 가줘야 겠다.”

“..?!”

“안돼요..! 자,잠시만요!1”


마리네뜨는 너무 놀라서 순간 말이 튀어나올 뻔 했어요 하지만 입을 꾹 막고 병사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답니다.


“전하! 붉은자라가 남색토끼를 데려왔습니다.”

“그래 어서 둘을 들라 하거라”


용왕님의 기뻐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요 용왕은 어두운 그림자에서 무섭게 빛이나는 아귀 였답니다. 용왕님은 보라색 해마, 나탈리와 함께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아주 사악하게 말이죠


용왕님은 자라를 칭찬했어요 “잘했구나 붉은 자라야, 내 일전에 네가 저지른 죄를 더 이상 묻지 않도록 하마” 하지만 나타니엘은 기쁘지 않았어요 용왕의 다음 말을 듣고는 더더욱 그랬죠 “자! 어서 칼을 준비하거라!”

“으으.. 안돼 토끼야..”


토끼 마리네뜨는 한순간에 묶여버리고, 주방에 있던 요리사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습니다. 토끼를 요리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요리사들은 토끼만 노리는 것이 아니었어요


“붉은 자라도 함께 먹어야 좋지 않았느냐? 자 어서 맛있게 요리해서 나에게 바치거라!”

“뭐?! 말도안돼! 마리네뜨!!”

“딱딱한 등껍질을 뚫어버리거라!”

“나타니엘! 내가 아까 받은걸 용왕님에게 비춰줘!”

“뭐?”

“아까 내가 신령님께 받은거 말이야! 빨리!”

“아,알았어!”


나타니엘은 토끼의 품속에서 물건을 꺼내어 용왕에게 빛을 비췄답니다. 그러자 용왕과 대신들은 괴로워 했어요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나타니엘!! 빨리 나를 위로 데려다줘!!”

“어.. 응! 알았어! 내 등에 타!!”


나타니엘은 다른 자라 보다 더 빠르게 헤엄을 칠 수 있었답니다. 덕분에, 마리네뜨가 숨이 차기전에 지상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마리네뜨.. 미안해.. 널 위험에 빠트려서..”

“아니야! 저 나쁜 물고기들이 너도 죽이려고 했잖아! 그리고 우리는 살았고”

“나 전부 다 알고있었는데?”

“하지만 넌 나를 살려줬잖아 그러니깐 괜찮아”

“마리네뜨..”

“그리고.. 그런짓을 했으니깐 더 이상 거기서 안전할 수는 없겠지..?”

“...”

“나랑같이 지상에서 사는건 어때? 여기도 꽤 살만해!”


나타니엘은 좋은 말 이라고 생각했지만 마리네뜨의 제안을 받아들일수 없었어요 마리네뜨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답니다. 결국. 마리네뜨를 뒤로 하고 바다에 다시 풍덩! 하고 빠졌어요


“나타니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용궁으로 열심히 헤엄치던 나타니엘은 바다밑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 뭔가 시끄러운 분위기였죠.


“이게 무슨소리지..”

“나타니엘! 저기1 붉은 자라 나타니엘이다!”

“나타니엘!”

“응? 나? 갑자기 왜?”

“용왕님께서 너를 부르셔! 빨리 용궁으로 가봐 나타니엘!”

“어어.. 응 알았어!”


나타니엘은 용궁으로 열심히 헤엄쳐 갔답니다. 용궁도 어쩐지 다른 곳처럼 소란스러웠어요 마치 축제를 하는 것 같았죠


“전하, 붉은 자라 나타니엘이 왔습니다.”

“그래, 나타니엘 어서 글라하라”

“어..?”


그런데, 용왕은 어찌된건지 굉장히 기쁜 목소리였고, 평소에 듣던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엄청나게 익숙한 목소리 였죠.


“아드리앙 전하!”

“그래 나일세 나타니엘. 그대가 나를 잠재운 아귀를 해치웠다고 했지?”


용왕 가브리엘은 아드리앙을 잠재우고 자신이 대신 용왕 자리에 오른 못된 친척이었던 것이었어요! 아드리앙은 자신을 구해준 나타니엘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연회를 열어주었답니다. 당연히.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게 된 나타니엘에게 많은 보상도 해 주고 말이죠


그러다 나타니엘은 문득 마리네뜨가 생각났어요 마리네뜨가 없었다면 절대 헤내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든 나타니엘은 마리네뜨에게 무언갈 해줘야 한다고 용왕 아드리앙에게 간청했죠.

다행이게도 그 부탁을 들어준 용왕은, 나타니엘에게 아주아주 귀한 상자를 주었어요


“어떤 상자에요?”

“음.. 공주마마께서 항상 궁금해 하시는 상자?”

“진짜요?!”

“쉿, 이야기 끝까지 들으면 알려드릴게요”


나타니엘은 그 상자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숲속의 입구를 찾아갔죠. 마리네뜨가 나오기를 계속해서 기다렸어요


“마리네뜨.. 다시는 안오는 걸까?”

“나타니엘!”


머리 위 하늘이 누릇누릇 해 질 때쯤, 마리네뜨는 나타니엘을 발견했어요 다시 못 볼줄 알았던 나타니엘을 만나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답니다.


“왜.. 다시 올라온거야?”

“네 덕분에 원래 잠들어 계셨던 용왕님께서 일어나셨어!”

“정말..?”

“응! 네 덕분이야”

“그래서 신령님이 나에게 이걸 주셨구나..”

“응..?”


마리네뜨는 목에 걸고있는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보았습니다. 당장이라도 빠져들것처럼 아름다운 목걸이였죠


“신령님이 이 목걸이는 순수한 소원 하나를 들어줄 거래. 내가 바다를 구했다면서 주시고 사라지셨어”

“우와.. 그렇구나”

“그래서.. 지금 빌려고했어”

“무슨 소원인데?”

“사람이 되겠다는 소원이야”


나타니엘은 너무 놀라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어요


“왜요?”

“그거야 나타니엘은 인간을 무서워 했으니까요”

“왜요?”

“인간들은 동물들 에게 못되게 굴었죠”

“너무해...”


나타니엘은 목걸이를 바라보고있는 마리네뜨에게 물었어요 “인간은 못됐는데 그런 인간이 되겠다고?” 말도 안된다는 듯이 쳐다봤죠


“응, 나는 인간이 돼서 왕이 될거야! 그럼 동물을 괴롭히지 말라고 할거고.. 왕의 말이니깐 모두가 들어줄거야..”

“...”

“그럼 바다속에 살고있는 친구들도 자주 올라와줄거잖아! 인간들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거고.. 그러니깐 인간이 될거야”

“그럼.. 이걸 받아줘”


나타니엘은 용왕에게 받은 상자를 마리네뜨에게 주었어요 마리네뜨가 열어보니..


“안에 뭐가 있었어요?”

“이 성의 진귀한 보물이요”

“그러니깐 그게 뭐에요?”


마리네뜨는 그 상자를 열어보았어요


“이게... 뭐야?”

“우리 바다의 보물중 하나야.. 보랏빛 진주.. 이걸로.. 네가 왕이 되어줘”

“그래 좋아”


마리네뜨는 그 보물을 받고 목걸에 대고 말했어요 “나와 나타니엘을 사람으로 만들어줘” 라고 말이죠. 그러자 둘의 모습은 아름답고 기품있는 옷을 갖춰입은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보석으로 멋진 왕궁을 세우고,예쁘고 멋진 아이를 낳고 동물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답니다.


“우와아..”

“그리고 그 자라와 토끼는 공주마마의 선대 왕과 왕비님 이랍니다.”

“그래서 아바마마가 많은 자라를 돌보시는 거에요?”

“그럼요 자라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들을 아낀답니다.”

“그럼 저도 토끼가 될수 있어요?”

“음.. 공주마마께서 훨씬 크면요?”

“히~잉..”

“자, 이제 이야기는 끝났으니깐 자야죠 불 끌게요”

“네에..”

“잘자요..”


마리네뜨 공주님




호위무사 블랙캣 X 공주 마리네뜨 (@Catmari_yun)님


“공주마마 뭐하십니까?”

마리네뜨는 이 나라의 공주로 올해 17살이 되었다 그녀의 전담 호위무사는 '블랙캣' 이라는 예명을 가지고 그녀의 곁을지키는 동갑내기 였다

“어? 블랙캣 왔어?”

마리네뜨는 책장에서 책 몇권을 꺼내 블랙캣에게 건내며 말했다

“이거 읽어봤어?” ‘‘등불의 전설...? 이게 뭡니까? ’’

블랙캣은 이해가 안 간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밤에 마을에서 등불축제가 열린데, 블랙캣 등불이 뭔지 알아?” “네 알죠”

블랙캣의 대답을 들은 마리네뜨는 어이가없다는듯이 따졌다

“알아!? 그러면서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거야 나도 오늘밤 그렇게 신비한 등불 이라는거 띄우고 싶은데.. ”

블랙캣은 이런 서민적인것들에 서툰 마리네뜨가 제법귀여웠다 모든 학문을 읽은 한나라의 영리한 공주인 마리네뜨가 이런면이 있다는걸 아는사람이 자신뿐이라는것도 꽤나 기분이 좋았기도 했다

“그럼 그 신비한등불 이라는거 띄우러 가실래요? 공주마마?”

잔뜩풀이 죽어있던 마리네뜨가 화색을 띄며 말했다

“진짜??블랙캣 최고야!”

그대로 마리네뜨는 블랙캣 품에 얼굴을묻고 꼬옥 안았다 두사람은 동갑이었지만 성별이 달랐고 마리네뜨는 키가 작았기에 키차이가 제법,아니 많이 났다 그래서 마리네뜨는 블랙캣의 품에 안겨있는것을 좋아한다 왠지 품에 안겨있으면 포근해져서 기분이 안정된 느낌이기 때문이다

“진짜 고마워 블랙캣” “공주마마가 원하신다면 하늘에있는 별도 따드릴 수 있는걸요”

이렇게 둘은 서로를 좋아했지만 신분차이때문에  이루어질수는 없었다 이렇게 둘만의 시간도 잠시 서재에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둘은 필사적으로 떨어졌다

“공주마마 폐하가 찾으십니다” “아 알았어 금방갈께”

마리네뜨는 가던중 뒤돌아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블랙캣 오늘저녁에 내방으로 와!’

그모습에 블랙캣은 똑같이 입모양으로 말해주었다

‘네 공주마마’

-------

모두가 잠들시간에 마리네뜨는 혼자 잠에 들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블랙캣을 기다렸다 초에 불하나 붙이고 책을 읽고있던도중 마리네뜨의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었다

“사랑하는사람과 함께 등불을띄우면 그 등불에 적힌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온다.” “흐음.. 소원이라..뭐빌까..”

마리네뜨가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때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공주마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누구인것이냐”

누가들어도 블랙캣인것을 마리네뜨는 왜 이제 왔냐는듯 차갑게 말했다

“너무하십니다 벌써 저를 잊으신것입니까 공주마마?”

하지만 블랙캣은 그에 굴하지않고 말했다

“들어오거라”

블랙캣이 들어오자마자 마리네뜨는 블랙캣을보고 잔소리를했다 저녁에오라고했는데 왜 이제야오는거냐 벌써 등불축제 다끝났겠다 뭐하다 오는거냐 공주 전담호위무사가 이래도 괜찮냐 등 오래 기다렸던 시간만큼 길게 잔소리를했다

“공주마마 잔소리듣다가 진짜로 등불축제 끝나겠습니다 이제 그만 가실까요 공주마마?” “치이..알았어”

얼마나 걸었을까 도착한곳은 마리네뜨가 기대하는 마을이아니라 산위였다 마을은 저멀리 밑에서있어서 오히려 더 마을과 멀어진것같았다 마리네뜨가 당황하며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블랙캣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등불을 꺼냈다

“앉으시지요’’ “블랙캣 여기는 마을이 아닌데?” “제가 마을에 데려다준다고하지 않았습니다 등불 띄우러 가자고했죠”

능청스럽게 말하는 블랙캣의 모습에 마리네뜨는입이 한껏튀어나온채 억울한목소리로 말했다 “치사해..”

그것도잠시 블랙캣이펼쳐놓은 도구들은 제법 그럴듯했기에 관심을가졌다

“그래서..뭐..어떻게 하는건데?”

“자 보십시오 여기에는 공주마마에 소원을 적는겁니다” 블랙캣은 종이를펼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매달아서 불을붙여 띄우는것이죠”

아까의 삐진 모습은온데간데 없고 마리네뜨는 벌써 소원을 적으려고했다

“보지마!”

뭐가그렇게 중요한소원인지 꽁꽁감싸면서 열심히적었다. 다적고 난뒤 뿌듯한표정으로 다적었다고 말하는 마리네뜨가 너무귀여웠다

“푸흐..공주마마 제가왜 산위로 데려왔는지 아십니까?” “아니? 왜그런건데?” “저기를보세요”

블랙캣은 마리네뜨의 고개를 돌려서 마을사람들이 적은소원들의 등불들이 올라오고있었고 그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와...너무예뻐 블랙캣..”

‘제눈에는 공주마마가 제일예쁩니다’ 블랙캣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말을 삼키면 마리네뜨를 바라만봤다

“이제 우리등불도 띄울까요?” “좋아!”

등불을 띄우고나서 한참을 말없이 풍경만 바라봤다 하지만 그정적은 마리네뜨의 물음으로 끝났다

“블랙캣 소원 뭐 썼어?”

조금고밀하더니이내 블랙캣은 입을 열었다

“공주마마랑 같은 소원을적었어요” “진짜?”

마리네뜨는 한번더 물었다

“그렇다니까요?” “블랙캣도 평생우리둘이 같이 있게 해달라고 했나보네” 블랙캣은 씨익 웃으면서말했다 “네”

그리고둘은 말없이 한참 서로를바라봤다

등불들의 빛에 비춰진 너는 정말 아름다웠고 나는 항상빌고있다 이행복을 누가 앗아가지 않기를 이 사랑이 이루어질수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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